[SC 페이퍼진] 현정화, '보고 싶은 북한 리분희'
2009-10-05 11:49
 현정화는 탁구선수로서 이룰 것 다 이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모두 제패했다. 세기의 탁구여왕 덩야핑도 이루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지금은 불혹의 나이에 KRA 감독과 여자대표팀 감독을 겸하고 있다. 지독한 승부근성이 끝없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가 뜨거운 그녀는 어떤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 최재성 기자 kkachi@sportschosun.com>

'이뿐이 언니' 손에 꼭 쥐어 준
금반지 아직도 끼고 있을지…

◇현정화의 마지막 목표는 체육계 여성지도자다.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녀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찬일 기자 hongil@sportschosun.com>

92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남북 단일팀 세계적 화제
금메달 딴 후 감시 속 호텔서 '새벽 수다' 아직도 생생
어릴적 옥탑방 '계단 오르던 경험'이 민첩성 길러줘

 ▶탁구가 뭔지 몰랐던 탁구신동

 부산 수정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재미난 곳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뽀얀 공을 치며 놀았고, 그게 어찌나 재밌어 보이는지 수시로 가서 창문에 매달려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공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워줬고.

 지독히 관심을 보이는 꼬맹이가 재밌었는지 하루는 선생님이 들어와서 쳐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그게 무슨 놀이인지도 몰랐다. 그 무렵 학교에서 각 반의 릴레이 선수들을 대상으로 탁구부원을 모집한다고 했다. 지체없이 손을 들었고, 마침내 라켓을 잡았다.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욕심도 나고, 지니까 화도 나고, 그렇게 하염없이 빠져들더라고요."

 처음엔 50명이 넘던 부원이 6개월 지나자 반으로 줄고, 6학년 되니 달랑 6명만 남았다.

 당시 부산에선 선화여중→선화여상이 명문 코스였으나, 현정화는 계성여중→계성여상으로 진학했다. 그래서 늘 '개인전 펄펄, 단체전 시들'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승부근성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지고 나면 속에서 불이 나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연습게임에서 져도 저쪽에 가서 앉아 울었으니까요. 분해서요."

 원래 뼈도 가늘고 약해 파워가 없었다. 온종일 경기를 벌이는 탁구는 파워, 스피드, 순발력, 지구력 모두 갖춰야 하기에 어금니 물고 오로지 근성으로 버텨냈다. 그나마 들소 같은 먹성을 가졌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너를 키우느니 소 한 마리 키우겠다"고 했을까.

 라켓을 잡은 이후 감기 몸살 따위로 쉬어본 적은 단 하루도 없다. 개인적인 사유로 운동을 건너뛴 적도 없다.

 "계성여상 2학년 때 아킬레스건을 다쳐 두 달, 1990년 초 허리 부상으로 3개월 운동 못한 게 전부였어요. 그래도 공만 안 쳤다 뿐이지 수영은 계속했죠."

 ▶옥탑방 훈련소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안이 어려워 부전동 옥탑방에 산 적이 있다. 다섯 식구가 옥탑 단칸방에 살았다. 4층 상가건물 옥상이었으니 5층에 산 셈이다. 1층은 병원이었고, 4층엔 건물 주인이 살았다. 그 옥탑을 매일 여남은 번씩 오르내렸다. 학교 가느라, 운동 가느라, 심부름 가느라.... 거기에 1년 반 정도 살았으니 오르내린 계단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밤이면 1층 병원에 불이 꺼져 깜깜했어요. 어린 마음에 그 병원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밤에 엄마가 심부름이라도 보내면 '하나 둘 셋' 세고 나서 벼락같이 뛰어내려 갔어요. 발이 안 보일 정도로요.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입구에서 준비자세를 취한 뒤 '하나 둘 셋' 하고 한달음에 올라갔죠. 병원 쪽은 쳐다보지 않고요."

 그게 알게 모르게 순발력 향상에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나중에 국가대표가 되어 태릉선수촌에 들어갔을 때 계단 뛰기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육상선수들조차 따라잡지 못했으니 얼마나 빨랐는지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그 건물은 큰길 한 블록 뒤편에 있었는데 차 타고 지나가다 보면 보여요. 근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죠. 가끔 그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일부러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가난의 산물이긴 했지만,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민첩성을 길러준 고마운 건물이다.

 ▶분희 언니와의 하룻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세계적인 화제였다. 남북이 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했기 때문이다. 여자단체전 우승으로 극적인 마무리까지 한 그 대회의 주인공은 남측의 현정화와 북측의 리분희였다.

 일단 양측은 맞대결 부담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한국의 경우 북한전서 진 다 빼고 중국에 맥없이 금메달 넘겨주는 게 순서다시피 했으니까. 양측 모두 큰 고비 하나를 없앤데다 힘까지 합쳤으니 중국을 꺾은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금메달을 목에 건 그날 밤 현정화는 당돌한 잠입을 감행했다. '언니, 언니' 하며 따랐던 한 살 위의 리분희 방으로.

 한 팀이라고는 하지만 양측의 감시 속에 남측은 호텔 5층, 북측은 6층에 묵고 있었다. 짐을 꾸리다 말고 한국에서 준비해 간 물건들을 챙겨서는 6층으로 올라갔다. 북측 감시원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현정화도 현정화지만 리분희가 다칠 수 있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잠입에 성공했고, 거기서 새벽녘까지 너댓 시간이나 수다를 떨며 놀았다.

 둘만의 비밀 얘기도 했다. 리분희는 동료 선수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현정화는 동료 선수 김성만과 결혼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리분희는 또 "너는 동생으로서 참 예뻤다. 호감이 갔다"고 고백했고, 현정화도 언니에게 가져 왔던 좋은 감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둘은 남북 탁구자매로서의 정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준비해 간 선물도 줬다. 화장품이며, 스타킹이며, 속옷이며....

 "마지막으로 금반지를 내밀었더니 극구 사양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마음먹고 준비해 간 거였거든요. 제 이름까지 새겨서."

 당시 북측은 남측 관계자들과의 개별 접촉을 전면 금지한 상황이었다.

 금반지를 지녔다가 행여 감시원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경을 치게 돼 있었으니 이분희가 손사래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정화는 기어이 이분희의 손에 금반지를 쥐여주고 나왔다. "분희 언니가 그 금반지를 끼고 있을지 궁금해요."

 사실 리분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16년째 못 만나고 있지만, 간간이 전해 들은 소식이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성희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으나 뇌수막염에 걸렸다는 소식, 미처 손을 쓰지 못해 뇌성마비를 앓게 되었다는 소식, 아이 치료를 위해 스웨덴에 간다는 소식....

 "사실 언니도 B형 간염을 앓아 밥도 잘 못 먹고 운동하면 빨리 지치고 그랬거든요. 너무 힘들어 지도자도 안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번엔 장외 단일팀으로

 현정화를 비롯한 '지바 멤버'들은 요즘 가슴 설레는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남북 단일팀 결성 20주년인 2011년에 탁구사에 남을 일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그 멤버들을 다시 만나면 좋은 기념사업 계획들이 나오겠지만, 당장은 그들과 만나 밥 먹으며 수다도 떨고, 술도 한잔하고 싶어요."

 당시 코리아팀 선수는 남-북 각 10명씩 총 20명. 스태프와 지도자까지 합하면 50명쯤 될 거란다. 어쩌다 10주년은 놓치고 말았는데 이번엔 탁구협회와 정부에 협조를 구해 제대로 자리를 펴 볼 참이다.

 "서울도 괜찮고, 평양도 괜찮고, 제3국도 상관없어요. 역사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들끼리 20년 만에 만나 회포도 풀고,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되는 방안도 찾아보면 좋지 않겠어요. 올 연말 준비에 들어갈 겁니다. 분희 언니를 꼭 만나고 싶어요."

아버지 선수 출신 … 남편 - 딸도 라켓과 인연

 ▶3대가 탁구선수

 막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등졌다. 탁구선수 출신이었는데 몸이 안 좋아 늘 힘겨워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경기를 하는데 갑자기 벤치에서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이것저것 지적해 주시는 게 아닌가. 그때 알았다. 탁구선수였고, 박성인 빙상연맹회장 등과는 친구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탁구선수 딸내미 자랑을 곧잘 하셨다. 아저씨들은 "아버지와 공 치는 게 너무 닮았다"고 감탄했고.

 한데 어머니는 극렬하게 반대하셨다. 맨 처음 탁구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정말 도시락 싸가지고 따라다니며 말렸어요. 전국에서 1등을 하는데도 말이에요. 공부를 곧잘 했던 딸이 그냥 남들처럼 살았으면 했던 것 같아요."

 내심 딸이 요절한 남편을 닮아가는 게 징그러웠는지도 모른다. 반대는 중3 때까지 이어지다가 영국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에서 4관왕(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하고 나서야 주저앉았다.

 결혼 머리에도 어머니는 양 소매를 걷어붙였다. 사윗감이 하필 탁구선수(김성만)였던 것이다. 귀한 딸을 탁구 하는 사람에겐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딸에게서 탁구선수를 만나 힘들게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읽은 까닭이리라.

 하나 자식 이기는 부모 있던가. 결국, 어머니는 탁구선수 남편에, 탁구선수 딸에, 탁구선수 사위까지 봐야 했다.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한데 이제는 손녀 서연이(서울 숭의초 2)가 라켓을 잡았다. 남편이 맘먹고 가르치고 있다. 일곱 살짜리 둘째 원준이도 봐서 탁구를 시킬 생각이다. 이래 되면 온 식구가 탁구인이 되는 거다.

 "서연이요? 말도 마세요. 승부근성이 장난 아니에요. 저보다 더해요. 지면 울고불고 난리 나요. 작년에 TV 교양프로에 나가 한 살 위 아이와 퀴즈대결을 하다가 졌는데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하더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거예요. 결국, 그날 밥도 안 먹고 잤어요. 이쯤 되면 탁구선수 시켜도 되겠죠? 지고 못 사는 성격이면 알아서 운동하거든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우리 국민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현정화의 '라켓 묘기'에 열광했다. 91년 지바 세계선수권에서는 리분희와 짝을 이뤄 각별한 정을 나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지도자로서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 와중에 딸 서연이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훌쩍 자라 엄마처럼 라켓을 잡았다. <스포츠조선 DB>